(OTN매거진)효월드 뿌리공원 '밀양손씨 문중' 조형물 및 유래(밀양손씨)
(OTN매거진)효월드 뿌리공원 '밀양손씨 문중' 조형물 및 유래(밀양손씨)
  • 임헌선 기자
  • 승인 2019.11.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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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N매거진) 효월드 뿌리공원 성씨별 조형물 및 유래 (밀양손씨 문중)

작품명 : 忠孝와 淸白의 氣象
조각가 : 박 수 용
이미지 : 전면확대 작품 忠孝와 淸白의 氣象 정면 후면확대 작품 忠孝와 淸白의 氣象 후면 작품설명 문효공(文孝公) 손순(孫順)의 석종(石鐘)의 기적과 의암 손병희(孫秉熙)선생의 애국정신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하였다.

효의 상징인 석종을 바탕에 두고 태극으로 문중의 뿌리와 기상을 표현하였고, 용의 힘찬 위용과 햇불은 자손만대의 영원함과 번영을 상징하며, 조상의 충효정신을 우렁찬 종소리에 실어 만세에 울려퍼지는 기상을 나타내었다.

* 밀양손씨 문중의 유래
유래 약 이천백년전 진한(辰韓)땅에 육촌(六村)중 무산 대 수촌장 구례마(茂山 大樹村長 俱禮馬)는 신라를 세운 원훈으로서 신라 삼대 유리왕 구년(서기삼십이년)에 사성(賜姓)을 받으니 이분이 손씨(孫氏)으 원조(元祖)이시다.

법흥왕 이십삼년에 충렬공(忠烈公)으로 시호를 받았고 무열왕 삼년에 문의왕(文義王)으로 추봉되었다.

삼십일세(世) 휘 순(諱順)은 석종(石鐘)의 기적이 있어 효(孝)로 명성이 천추에 빛나 신라 흥덕왕십년 을묘(서기 팔백삼십오년)에 월성군(月城君)으로 책봉되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니 이분이 시조(始祖)로 다시 일세(世)가 된다.

문효공의 효행에 대하여는 삼국유사 고려사 효행록 조선조의 삼강록 여지승람 명심보감 효행편 등에 수록되어 있다 후에 관향이 셋으로 나뉘었으니 밀양(密陽) 평해(平海) 경주(慶州)이다 관향을 밀양으로 한분은 칠세(世)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 삼중대광사도 광리군(三重大匡司徒 廣理君) 휘 긍훈(諱 兢訓)이며 시호는 무열이니 전국 각지에 널리 번창하여 살고 있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의 관조(貫祖)이시다. 삼십세(世) 휘 화숙(諱 和叔)은 황강도 역승(黃江道 驛丞)이니 이태조 육년 정축(서기 일천삼백구십칠년)에 밀양에서 공주군(公州郡) 유등천면으로 집을 옮겨 사시니 지금의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 변 내동이다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육백여년을 살아오고 있으며 역승공의 향사를 모시는 수정재(水晶齋)는 시 문화재 자료 제삼십호이며 대전광역시 서구 변동에 위치해 있다.

사십사세(世) 의암(義庵) 휘 병희(諱 秉熙)는 서기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 민족대표 삼십삼인의 선봉(先鋒)으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여 자주 독립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온겨레의 잠자는 혼을 일깨워 만세 운동을 일으켜 민족단결을 다지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밀양손씨(密陽孫氏)는 충효(忠孝)와 청백(淸白)을 가문의 근본으로 삼아 열사(烈士)와 명경거유(名卿巨儒) 덕업문장(德業文章)과 충신효자(忠臣孝子)가 면면히 배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기 일천구백구십팔년 무인 청명절
文孝公 四十 八世孫 重培 삼가짓고 長巖 李坤淳 삼가쓰다

* 삼국유사(제5권)

흥덕왕대에 손순이 아이를 묻다. 손순(孫順을 古本에서 孫舜)은 모량리 사람으로서 아버지 학산(鶴山)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풀팔이로 곡식을 얻어 노모를 봉양하였는데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라 하였다. 손순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어 언제나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지라 손순이 그의 아내에게 말하기를 "아이를 다시 얻을 수가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님은 굶주림이 심하시오, 허니 아이를 매장시켜 어머니를 배불리 드시도록 해야겠소"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산은 모량의 서북 쪽에 있다.) 북쪽들에 가서 땅을 파자 석종(石鐘)이 나왔는데 매우 신기하여 부부가 놀라고 괴이 하게 여겨 얼른 나무 위에 걸고 두두려보니 은은한 소리가 듣기에 퍽 좋았다. 아내가 말하기를 "이 이상한 물건을 얻음은 필경 아이의 복인 듯 하니 아이를 묻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하자 남편은 아내의 말을 옳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와 들보에 매달아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흥덕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서쪽들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리는데 그 청아함이 이를데 없으니 보통 종소리와는 다르다. 속히 가서 조사해오라" 하였다. 왕의 사자가 그 집을 조사하고 사실을 아뢰니 왕이 이르기를 "옛날 곽거(郭巨)가 아들을 땅에 묻으려 하자 하늘에서 금솥을 내렸다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아들을 묻으려 하자 땅속에서 석종이 솟아 나왔으니 곽거의 효와 손순의 효는 천지 사이의 거울이 된다." 하고는 집 한채를 하사하고 해마다 벼50석을 주어 극진한 효성을 숭상했다. 손순은 예전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홍효사라 하였으며 석종을 모셔두었는데 진성왕(眞聖王)때에 후백제의 횡포한 도적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와 종을 없어지고 절터만 남아있다. 그 종을 얻은 자리를 완호평(完乎平)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와전되어 지량평(枝良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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