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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은 같은 말이다. 한 해의 끝인 12월 31일 24시00분00초가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 00시00분00초와 같듯 한반도 육지의 남쪽 끄트머리인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의 땅끝은 땅의 시작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굳이 땅끝으로 희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끝과 시작이 같기 때문이다.
북위 34도17분38초에 위치한 땅끝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북 온성까지를 이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또 해남 땅끝은 강진, 나주, 광주, 완주, 익산, 논산, 공주, 천안, 평택, 수원, 남태령을 거쳐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의 끝과 시작이기도 하다.
땅끝으로 가는 길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황토 구릉은 파도가 물결치듯 골과 골을 맞댄 채 끊임없이 이어지고 해남의 아낙들은 겨울배추 막바지 수확이 한창인 배추밭에서 풍경화의 주인공을 자처한다. 구릉을 넘고 또 넘던 77번 국도는 송지면 소죽리부터 바다를 벗한다. 마늘밭이 아름다운 어촌마을 중리와 송림이 아름다운 송호해변이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땅끝이 가까웠다는 신호다.
땅끝마을은 상상 밖으로 꽤 번화하다. 본래 지명인 ‘토말’에서 2008년 ‘땅끝’으로 개명하면서 국토순례단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사계절 내내 국토 최남단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 사자봉 정상에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세워지고 전망대에 오르는 모노레일이 개통되면서 한적하던 반농반어 마을은 해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신했다.
이곳 지명을 둘러싸고 최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온다. 땅끝의 한자어는 ‘토말(土末)’이지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지명은 ‘지말(地末)’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현재 토말비가 서 있는 곳에 ‘지말’이라고 음각된 자연석이 있었는데 ‘地’자의 오른쪽 획인 ‘也’가 새겨진 부분이 떨어져 ‘토말’로 잘못 읽혀졌다는 것이다. 향토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섬나라인 일본이 일부러 ‘也’를 지워 ‘땅끝’이 아니라 ‘흙끝’으로 변조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땅끝마을을 상징하는 사진은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바다 일출. 소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내린 맴섬은 바위섬으로 2월과 10월에 각각 사흘 정도 섬 사이로 해가 뜨는 장관을 연출한다. 맴섬 옆에는 두 개의 바위가 서로 사이좋게 마주보는 형제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땅끝마을 전망대를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모노레일을 타는 것이다. 모노레일 입구에서 옛 산길을 걸어 전망대에 올라도 되고, 차를 타고 갈두산 중턱에 자리 잡은 주차장에서 땅끝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워낙 경사가 가팔라 대부분 모노레일을 탄다.
모노레일은 갈두항 선착장에서 삼남길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나무데크로 조성된 길을 오르면 나온다. 2006년 첫선을 보인 모노레일은 땅끝전망대까지 400m 급경사 구간을 20인승 2량이 교대로 왕복 운행한다. 소요 시간은 13분. 모노레일이 고도를 높이며 선허리를 에두르자 갈두항을 비롯한 다도해의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한눈에 들어온다.
사자봉(156m) 정상에 위치한 땅끝전망대의 높이는 40m. 엘리베이터를 타고 봉화를 형상화한 9층 전망대에 오르면 남도와 다도해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남쪽으로 백일도, 흑일도, 보길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서쪽으로는 밀매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제주도의 한라산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
땅끝전망대에서 해안의 땅끝탑까지는 400m로 1300여 개의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데크 주위로는 동백나무를 비롯해 남해안의 키 낮은 원시림이 빽빽하다.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보길도를 비롯해 주변 섬으로 오가는 여객선들이 땅끝의 정취를 더한다.
드디어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땅끝을 만난다. 돛을 펼쳐 놓은 것처럼 우뚝한 10m 높이의 땅끝탑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로 이루어진 땅끝은 장엄한 일출과 아름다운 일몰을 함께 감상하는 곳. 희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순례객처럼 모여드는 곳이다.
<글:국민일보에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