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인 릴케

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좋아한다. 내가 그의 시를 즐겨 읽기 시작하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이다. 그의 시에는 누구나 앓게 되는 고뇌와 고독, 비탄과 모순이 베여 있다. 특히 그의 시는 가을에 읽으면 더욱 실감이 난다. 오늘도 두레수도원 둘레길 7Km를 낙엽을 밟으며 걸을 때에 릴케의 ‘가을날’을 읊조리며 걷는다.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하여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해 주소서.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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