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지역 사찰의 역사 (2)
충청도 지역 사찰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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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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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절 구경하기2 - 번뇌 빠진 중생 품어주는 '자비의 미소'<초기 불교 불상제작 금지 ··· 유럽문화 영향 받아 등장

<신청풍명월의 지난소식> 불상석가가 열반에 든 후 500여 년 동안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에 따라서 불상 없이 불탑·수레바퀴·연꽃·보리수와 같은 부처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대신해 왔으나,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이 유럽과 인도가 마주치는 인도 서부의 간다라(Gandhara : 지금의 파키스탄)지방을 점령한 이후 유럽의 영향으로 불상제작이 시작됐다.

▲ 전경

그후 1세기경에 자기해탈보다 대중구제에 나서는 대승불교의 성립과 함께 대중포교의 한 수단으로 불상이 만들어졌는데, 불상은 석가모니가 성불하기 전의 모습을 그린 보살상과 성불한 이후의 모습인 여래상으로 나눠진다.그러나 5세기 중기까지도 불상은 간다라 양식을 그대로 모방해서 인도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인도 아닌 눈이 크고 머리는 곱슬머리인 모습이었으며, 부처의 제자들도 샌들을 신거나 가죽신을 신는 등 서역과 간다라 지방의 영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5세기 말~6세기 초에 불상의 중국 토착화가 이루어지면서 둥근 얼굴도 있지만, 홀쭉하게 길어진 얼굴에 긴 눈썹과 가는 눈·뾰쪽한 코 등 서양인도 중국인도 아닌 상상적인 인물로 변하고, 벌거벗다시피 하던 몸도 두꺼운 옷으로 가려지고 중국인 특유의 옷주름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6세기부터는 인도의 굽타(Goupta)양식의 영향으로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고 조용한 모습, 두껍던 옷차림도 점점 얇아지고, 평평하던 몸통도 둥근 원통형으로 입체화되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국내의 대표적인 굽타양식은 석굴암 불상이 있다.

삼국 중 남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백제는 탁월한 독창성이 나타나서 잔잔한 미소와 부드러운 신체, 옷주름이 강조됐는데, 서산마애삼존불, 태안 마애삼존불,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금동 삼존불상.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살입상(보물 제330호).부여 규암의 보살상.공주 의당의 금동 보살입상 등이 있다.

그런데,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인 여래는 본래 산스크리트.팔리어인 타타가타(tathagata)의 번역어로서 tatha는 여(如)라고 번역되며, 진리 혹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의미하고, agatha는 온다(來)는 뜻인 agamdml 과거 완료형으로서 타타가타는 완전한 인격자 혹은 수행완성자를 의미한다.타타가타는 처음에는 브라만교 이외의 ‘출가자 중에서 뛰어난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다가 불교용어가 됐는데, 석가족의 성자인 석가모니(Sakamuni)는 성(姓)이 고타마(Gotama)이어서 고타마 붓타(Gotama Buddha) 라고도 한다.

불상은 시대에 따라서 부처의 앉아있는 자세와 손의 모양과 손에 든 물건 등 모양에 따라서 그 불상이 어떤 부처인가를 알려주는데, 여래 중 으뜸이며 실존했던 유일한 인물인 석가모니불은 그가 태어날 때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부르짖으며 웅변하는 모습의 탄생불.깊은 명상에 잠기는 선정인불(禪定印佛).설법하는 모습의 설법인불(說法印佛)·깨달음을 이루었을 때의 모습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등으로 나누는데, 특히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대지의 여신을 불러내어 석가의 깨달음을 보이자 악마가 항복한다는 항마촉지인의 부처를 모신 곳이 대웅전(大雄殿)이다.

여래상의 기본 모습은 깨달음과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는 살상투 즉, 육계와 지혜의 빛을 상징한다고 하는 이마 한 가운데의 수정이나 보석 즉, 백호(白毫)를 한 이외에는 일체의 장신구가 없는데 반해서, 성불하기 전의 신도를 의미하는 보살은 열심히 수행하지만 위는 천의(天衣)를 걸치고, 아래는 바지(裙衣)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보석 허리띠를 차는 등 귀인 모습이 보통이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부처는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뻗어서 세우고 오른손 검지로 그 첫마디를 쥐고 있는 비로자나불인데, 비로나자불은 화엄종을 주종으로 하는 사찰의 본존불이다.

이 부처를 모신 건물을 대적광전(大寂光殿 : 화암전(華嚴殿) 또는 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함)이다.비로나자불은 14세기경에 이르러서는 풍만하면서도 미소 띤 얼굴,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옷고름, 정교한 장식 등이 적절히 반영된 불상으로 늘어나서 불교의 수준 높은 형이상학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여래상이 되었다.

합천 해인사의 대적광전.전북 완주 위봉사의 보광명전(보물제608호) 등이 대표적이고, 이 여래를 중심으로 철학체계를 세운 것이 밀교이다.

또,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아미타여래의 아미타란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Amitayus.Amitbhas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서 서방(西方)을 안락(安樂)이라고 뜻하는 극락정토에서 중생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여래이다. 아미타여래는 설법을 하거나 참선할 때의 모습에 따라서 손의 모양이 변한다고 하는데,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이래 원효의 정토교에 의해서 널리 보급되어 중생들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만 해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 이 부처를 모신 건물이 무량수전(극락전 혹은 아미타전이라고도 함)이다.부석사 무량수전.봉정사 극락전.부여 무량사 극락전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동방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질병과 고뇌를 벗어나게 해준다고 하는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왼손에 약병이나 약단지를 들고, 오른손에는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부처를 모신 곳이 약사전(藥師殿)이다. 대승불교가 확장되면서 부처가 여러 모습으로 나눠지자 보살도 점차 여러 모습으로 나눠져서, 여래의 양쪽에서 협시하는 것을 협시보살(挾侍菩薩)이라고 하며, 주존과 함께 삼존불을 이룬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상징으로 삼는 것은 줄기 속은 텅 비었으면서도 항상 꼿꼿하게 서 있고, 꽃잎을 오므렸다가도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새롭게 꽃봉오리를 피우는 모습이 불교의 재생과 환생, 영생불멸을 상징한다고 해서 맑고 깨끗함과 대자대비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다.

또, 더러운 진흙구덩이에서 자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항상 그윽한 향기에 좋은 열매까지 맺는 연꽃은 부처가 태어났을 때 맨 처음 밟은 것도 연꽃이어서 삼국시대 이래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것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꽃상여의 장식이나 고분벽화 등에서도 빠지지 않고 그렸다.

또, 번뇌를 일으켜서 주위를 오염시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만 올바로 닦으면 자신과 주위를 밝힘을 줄 수 있다고 하는 깨달음의 상징으로도 표현되는 연꽃을 불교에서는 불 속에 핀 연꽃(火中蓮)이라고 한다. <법무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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