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빈두레선교 운동(3)
활빈선교운동과 두레선교운동은 선교사업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선교운동이라 부른다. 사업과 선교 사이에 차이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업과 선교운동이 무엇이 다른가? 3가지로 다르다.
첫째로 사업은 이익과 이권에 관심을 가지나 운동은 이념과 의미에 관심을 가진다.
둘째로 사업은 조직과 기구에 관심을 가지나 운동은 사람과 정신에 관심을 가진다.
셋째는 사업은 현재에 관심을 가지나 운동은 미래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두레선교는 사업이 아니라 선교운동이다. 선교사업은 조직이 커져야 하고 이익이 남아야 한다. 그러나 선교운동은 다르다. 적자를 보아도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여도 운동을 펼쳐 나가는 그 자체로써 의미를 지닌다. 나는 지난 45년 동안에 활빈두레선교운동을 나라 안팎에서 펼쳐 오면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다. 그러나 후회하지 아니한다. 처음부터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선교사업으로 펼쳐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와 겨레를 섬기겠다는 선교운동으로 일하여 왔기 때문이다.
1971년 10월 3일에 청계천 빈민촌에서 시작하여 거의 10년간 펼쳐온 빈민선교운동 기간에는 굶기도 많이 하고 매도 맞았다. 그러나 그 기간이 나의 선교운동 역사에 가장 아름다운 기간이었다. 빈민촌에서 거듭 다짐한 것이 "여기서 죽자", "살아나갈 생각을 말고 죽어 천국으로 직행하자"는 마음으로 일하였다. 나중에는 만성피로증에 걸려 먹어도 배고프고, 자도 잠 오고, 쉬어도 쉬어지지를 않았다. 병원에 가서 진찰하였더니 만성피로증이니 일 년간 일을 멈추고 소고기를 실컷 먹으며 쉬라 하였다.
두 가지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셔서 정치범으로 감옥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감옥이 호텔 같았다. 담백질 덩어리인 콩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13개월간 독방에서 싫도록 잠을 잤다. 옥중에서 요가선생을 만나 요가 지도를 일대 일로 받으며 몸을 단련하였더니 13개월 후에 출소할 때는 건강하고 씽씽한 몸으로 나올 수 있었다.
청계천 빈민촌이 철거됨에 따라 철거민들을 조직하여 경기도 화성군의 바다 막아 생긴 땅인 남양만 간척지로 집단 귀농하였다. 소금 땅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교회를 먼저 세우고 화장실을 두 번째로 짓고 그리고 나서 각자 살 집을 세웠다. 소금 땅에 심은 벼가 심으면 죽고, 다시 심으면 다시 죽고 하기를 4번을 되풀이 한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벼농사만으로는 가난을 면할 수 없다 하여 양돈단지를 세우고 비육소 단지를 세우고 젖소단지까지 세우고 하였으나 하는 일미다 제대로 되지를 못하였다. 끝내는 빚더미에 앉아 앞길이 막막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움치고 뛸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에 죽기를 작정하고 금식기도를 시작하였다. 금식기도 5일 만에 로마서 8장 12절과 13절을 접하고 살 길이 열렸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