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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청계천 빈민촌에서 두레선교운동을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신학교 동기생들이 나를 적극 말렸다. "김진홍, 너가 다른 선교도 아니고 빈민선교인데 아무런 재정적인 확보 없이 그냥 빈손으로 들어갔다가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실패로 끝날거야. 굳이 빈민촌으로 들어가려면 우리 교단의 큰 교회나 아니면 크리스천 기업가들의 지원을 확보하고 들어가야지 돈키호테 식으로 하지 말아." 나는 장로회신학대학 동기들의 충고가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문제를 두고 일주일간 특별기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장로회신학대학이 있는 워커힐 뒷산에는 묘지들이 있다. 기숙사에서 저녁밥을 먹고는 묘지로 올라가 묘지 사이에 엎드려 기도 드렸다. "하나님 청계천 선교지로 들어가려는데 친구들이 재정확보를 하고 들어가라 합니다. 꼭 그렇게 하여야 할까요. 그냥 들어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시작이 될까요?" 그렇게 기도하던 7일째 되던 저녁에 응답을 받아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기도하는 중에 어린 시절 자랐던 고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자란 고향은 경북 청송 안덕의 사부실이란 마을이었다. 아버지께서 일본서 작고하시고 가난하여진 우리 가족은 사부실 외가에서 행랑채에 살았다. 외갓집은 부농(富農)이어서 아침나절이면 머슴들이 외할머니께 일터로 나가며 신고하였다. 외할머니 택호가 "시노댁"이어서 "시노댁이요, 오늘 나는 과수원에서 일합니다."하면 외할머니는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 머슴은 "시노댁이요, 나는 오늘 못자리판에 갑니다."하면 외할머니는 역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서는 외할머니는 숙모에게 일러서 참 때 참 보내고 점심때면 점심 보내고 목마르다고 마실 물 보내곤 하였다. 머슴들은 들에서 일하며 보내 주는 식사를 끼니마다 먹으며 열심히 일만 하다 해질녘 개울로 가서 몸을 씻고 들어와 자면 되는 것이었다. 머슴은 자신이 맡은 일터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필요한 것은 주인이 때를 따라 모두 보내 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머슴이고 하나님은 주인이시다. 머슴인 나는 나의 일터가 될 청계천 빈민촌으로 들어가 열심히 일만 하면 먹고 입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모두 때를 따라 뒷바라지 해 주실 것이다." 이런 확신이 들면서 빌립보서 4장 19절의 말씀이 마음 깊이 터를 잡았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장 19절) 나는 이 말씀을 약속으로 믿고 그냥 들어가 일하기로 작심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두레선교사역이 어언 45년이 지났다. 45년째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45년 전의 확신이 새삼스러워진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확실히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머슴인 나에게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 어김없이 공급하여 주셨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 나의 45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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