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올레산악회(회장 이근재) 회원 50여명은 지난 20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천혜의 계곡 화양동을 안고 있는 명산인 도명산(643m)을 찾았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화양탐방지원센터~첨성대~도명산~공림사 당일 코스 소요시간 4시간 30분 거리 8km 이다.
도명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청천면까지 와야 하며 청천에서 592번 지방도를 따라 10분만 가면, 화양유스호스텔 앞의 화양 제 1교를 건너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 입구인 채운사 입구 화양교 까지는 20여정도 공원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공원길과 산길을 같이 걸어갈 수 있는 환상의 등산코스라 할 수 있다. 주차장을 벗어나 화양 2교,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운영담, 서원철폐의 원이 되었다는 화양서원, 우암 송시열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금사담 암서재, 첨성대 등 화양 9곡의 명소들을 지나 채운사 바로전인 화양교 옆길까지 올수 있다.

도명산 등산로에는 닥총나무, 생강나무, 느릅나무, 산갈나무, 진달래, 노린재나무, 쪽동백, 소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종의 나무에 설명서를 달아 자연교육장으로의 손색이 없는 시설을 해놓았다.
정상은 크고 작은 바위 다섯개가 하나를 이뤄 정상을 형성하고 있다 . 그 중 높고 큰 바위에 올라 앉아보면 신선이 따로 없었다. 동으로는 백악산에서 뻗은 줄기, 서로는 그 너머 금단산, 남으로는 낙영산 너머 톱날같이 늘어선 속리산 연봉들, 북으로는 화양천 너머 군자산의 위엄이 다가선다. 정상주변에는 분개처럼 잘 자란 소나무 몇 그루가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 산행일행은 정상에서 허기진 배는 간단하게 요기하고 공림사 주차장 아랫마을에서 긴 휴식를 마련하기로 약속 되여 하산을 재촉하니 어느덧 낙영산 갈림길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생각하는 마음이 산행 시간 있다면 낙영산 정상을 가고 싶은데....다음으로 기약하면서 다시 계곡길 따라 하산을 내려오다 보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 공림사가 보였다.

산행 일행은 잠시 공림사 가보니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공림사에 들러 돌아보고 남긴 ‘시’가 있었다.
골짝의 연하 개려 하는데 / 洞裏烟霞鎖欲開
깊은 밤 별빛 아래 잠깐 배회했네 / 夜深星斗暫徘徊
시냇물에 가을 달빛 밝음 생각하니 / 想得潭溪秋月白
이 인생 어느 날 다시 찾아올까 / 此生何日溯洄來
위 시는 송시열이 공림사 인근 화양구곡에 ‘암서재’라는 건물을 짓고 공부하면서 널리 소문난 공림사에 들러 뛰어난 절경을 둘러보고 이 시를 남긴 것이다. 공림사에 들른 송시열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었나 보다. 오히려 여유로운 공림사의 산행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옛 일을 추억하게 만들었나보다. 거기에는 반성도 포함될 것이고, 또한 앞으로의 기대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공림사는 낙영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고, 낙영산은 온갖 기이한 형상을 바위들로 구성되어 마치 신선의 세상에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산이며, 산의 이름을 ‘낙영산’이라고 한 연유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라 진평왕 때에 당 고조가 세수를 하려고 세숫물을 들여다보는데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세수 대야에 비쳤다. 이를 이상히 여긴 당 고조는 신하를 불러 이 산을 찾도록 했는데 당나라 땅내에서 이를 찾지 못했다. 이러던 중 꿈에 동자승이 나타나 이 산은 당나라 땅이 아니라 신라 땅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에 신라로 사신을 보내 이 산을 찾으려 했으나 이 역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신이 낙심하며 당나라로 돌아오던 중, 길에서 한 도승을 만나게 되었고 도승이 산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신이 이를 따라 이곳에 도착해보니 정말 당고조가 얘기한 그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후 이산을 “당나라 땅에 그림자를 드리우다”는 뜻의 낙영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공림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이지만 국가에 분란이 있을 때마다 심하게 훼손되고 파괴 되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임진란 및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사찰이 거의 황폐화 되었고 또 다시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사찰의 모든 전각이 사라지게 되였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새롭게 사찰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는 더욱 강해지게 되었고 그런 결과 현재 공림사는 대찰의 모습을 다시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림사는 수행의 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 머물러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수행의 과정은 일반인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다.
수년전부터 복잡하고 싫증나는 도시의 삶에 찌들어 뭔가 고민하며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싶을 때, 송시열이 그랬던 것처럼 공림사에 들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바라고, 공림사에 들러 자신을 반성하고, 또한 앞으로의 희망을 설계하여 시작되는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올레산악회원들도 수행의 도량으로 알려진 공림사에서 각자 자신을 되돌아 보고, 다시 새롭게 설계하면서 무탈하게 하산 완료하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