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성서조선 운동 (5)
<종교칼럼>성서조선 운동 (5)
  • 김재복 기자
  • 승인 2016.09.18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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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에서

성서조선 운동 (5)

▲ 김진홍 목사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7절, 26절)

 

양정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가르치는 일로 해직 당한 김교신 선생은 생계를 위하여 함흥비료공장 사감으로 취직하였다. 선생은 사감이 된 후로 밤마다 도박장을 찾아 다니며 도박판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도박과 술과 낭비에서 벗어나기를 호소하였다. 선생은 글자 그대로 신앙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크리스천이었다. 이러한 선생의 노력에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반발하고 욕하고 때로는 폭행까지 가하였으나, 선생의 진심을 느끼게 된 후로는 한 사람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함흥비료공장 노동자들 사이에 전염병인 장티푸스가 퍼지게 되었다. 그 시절엔 장티푸스에 걸리면 치료약이 없던 시절이라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다. 모두들 장티푸스 환자를 피하려 하였으나 선생만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방문하며 수발하였다. 선생을 아끼는 친지들이 그런 선생을 적극 만류하였다. 때는 일본의 패망이 눈 앞에 다가오던 시절인지라 선생을 아끼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권유하였다.

 

"선생님,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이 해방될 터인데 해방된 조국에는 선생님 같으신 인재가 꼭 필요합니다. 몸을 아끼십시오. 그렇게 환자들을 밤새워 돌보시다가는 선생님도 감염되어 큰 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선생은 막무가내였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죽기가지 하셨는데 나는 죽어가는 동포를 두고 몸을 피하라니요. 절대로 그럴 순 없습니다. 나는 마지막 환자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몸으로 섬기겠습니다,”라며 계속하였다.

 

선생을 아끼던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던대로 선생은 자신이 전염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1945년 4월 25일 선생은 숨을 거두고 천국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 해방을 불과 넉 달 앞둔 선생의 나이 불과 44세 되던 때였다. 해방 후 극심한 사상의 혼란기에 선생처럼 실천하는 크리스천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을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그지없다.

 

성서조선운동은 성서한국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한국시대가 열릴 것이다. 요즈음 시국이 돌아가는 흐름을 살피노라면 통일의 날이 가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통일한국시대에 우리 겨레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단연코 성서한국시대가 되어야 한다. 통일한국시대에는 조국을 성서 위에 세워야 한다. 성서 위에 세워진 통일한국이 부강한 한국, 선진한국을 이루어 그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선교에 앞장서야 한다. 바로 선교한국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나가야 할 깃발이 있다.

 

‘성서 한국’

‘통일 한국’

‘선교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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