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죽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죽는 것도 역시 몸이 죽는 것이요. 진자 나인 마음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나’는 마음이 나지 몸(육체)은 내가 아닙니다.
세상을 떠났다 몸을 버렸다 그러지 않아요 그러니 진짜 나인이 마음이 가자나인 몸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 그것입니다. 몸뚱이는 내가 아닙니다. 빌려 입은 옷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세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버리고 떠나갈 것이니까요.
원래 마음인 나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살아왔고 또 무한한 미래에 살것입니다. 불생불면입니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본래의 나는 태어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죽어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이 몸뚱이가 나고 병들고 늙고 죽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영원합니다.
누가 진자 나를 죽일 수도 없고 스스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원자 폭탄이 내 머리 위에 떨어져도 진자 나는 죽지 않습니다. 이 몸뚱이가 가루가 되면 되었지 마음인 나는 죽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영생한다고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종교가 아니라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라면 아주 확실히는 몰라도 죽으면 아주 그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믿고 있습니다. 불교의 진리는 불생불멸이 바탕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나라에서도 국가를 위하여 희생된 전몰군경이나 애국지사 영혼을 위하여 탑도 세워주고 제사도 지내줍니다. 또 가정에서도 조상령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그냥 자식된 도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야기가 많으나 지면 관계로 약하겠습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문제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아니나 또 사람이거나 짐승이거나 생을 받은 중생은 다 절실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화재를 만나 집과 살림살이가 다 타든지 갑자기 망해서 재산이 탕진 되든 또 몸을 다쳐 불구자가 되든지 간에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심각한 죽음도 닥치면 받아야 되는데 다른 것들은 다 죽는 것보다 낫다고 했으니까 다 받고 살아야지요. 안 받을려고 한다고 안 받아집니까? 모두 내가 전생부터 지어서 빚 갚은 것과 같은 것이니 달게 받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닥치는 액난 피할려고 해서 피해집니까? 오히려 전부 내탓이니 내가 다 받아야 되겠다고 결심을 해야 합니다. 잘되라고 해서 잘되고 못되라고 해서 못되라고 해서 못되는 것이 아니지요, 될 것은 될만큼 되고 안 될 것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으례 그러려니 하고 살면 편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