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30)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30)
  • OTN뉴스
  • 승인 2014.12.14 0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서한국, 통일한국 시대를 꿈꾸며(1)

겨레가 일본제국주의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때에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독립 운동가들의 면면에 따라 독립을 쟁취하려는 방략(方略)이 달랐다. 김구 선생은 무력항쟁을 주도하였고, 이승만 박사는 외교방략을 주창하였다. 이승훈 장로, 조만식 장로 같은 어른은 민족산업을 일으켜 조선독립의 기초를 닦으려 하셨고, 안창호 선생은 교육을 통하여 건전한 인격을 연마하여 독립국가의 터전을 세우려 하였다.

그런 선조들 중에 김교신 선생은 신앙입국(信仰立國)을 줄기차게 주창하였다. 성서 위에 선 건강한 신앙으로 독립 국가의 기초를 세우려 하였다. 1927년 1월 동경 유학생들 중 크리스천 몇몇이 모여 <성서조선연구회>를 시작하였다. 김교신, 송두용, 함석헌, 정상훈 등이 회원이었고 김교신이 주도하였다. 20대 나이의 팔팔한 젊은이들로 조국을 사랑하는 조국애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심이 독실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조선독립의 기초를 성서 위에 세우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이들은 1927년 7월에 <성서조선>이란 제목으로 월간지를 창간하였다. 성서조선지는 이름 그대로 <조선을 성서 위에>세우자는 운동이었다. <성서조선>의 창간호에서 창간사를 쓴 김교신 선생은 자신들의 마음을 다음같이 적었다.

“우리는 다소의 경험과 확신을 가지고 오늘의 조선에 줄 바 가장 귀한 선물은 신기하지도 않은 구신약성서 1권이 있는 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하고 한 곳에 소망을 두는 어리석은 5, 6인이 동경 시외에 있는 스기나미촌에서 처음으로 모임을 가지고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였다.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공부하면서 지내온 지 반년 남짓하여, 그간의 소원이던 연구의 일단을 세상에 공개하고자 하여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고 하게 되었다.......다만 우리의 마음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이라는 두 글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고의 선물은 <성서>한 권 뿐이니 양자의 어느 하나도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성서조선>아, 너는 우선 이스라엘 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 신자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국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서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 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유한 조선인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서 나무꾼 한 사람을 위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성서조선>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인을 기다려 면담하라. 서로 담론하라.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구한들 무엇을 한탄할손가!”(1927년 7월 창간호)

선생이 쓴 바대로 한 세기 후에 나는 창간사를 거듭 읽으며 담론하는 자가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본사 : 세종특별자치시 국세청로 4 (나성동, 갤러리 세종프라자) 602호
  • 연락처 : 044-999-2425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67
  • 발행·편집인 : 임헌선
  • 대전본부 : 대전광역시 동구 홍도로 51번길 13 청와대 105호
  • 발행일 : 2018-03-21
  • 제호 : OTN매거진
  • 명칭 : OTN매거진
  • 홈페이지 주소 : http://www.kotn.kr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헌선
  • 등록일 : 2018-02-21
  • OTN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OTN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us7232@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