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시작된 시기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이론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1885년 부활절 날 아침에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제물포 항(지금의 인천항)에 도착한 때를 기점으로 잡는다. 언더우드는 장로교 선교사였고, 아펜셀러는 감리교 선교사였다. 그들이 도착함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지만, 그전에 이미 세 가지 준비된 사항이 있었다. 세계 선교사상 드물게 보는 사항이었다.
첫째는 선교사가 오기 전에 먼저 성경이 번역이 되어 있었다. 일본에 파견되었던 이수정이란 관리가 일본에서 예수를 믿게 되어, 일본어에서 한글로 누가복음을 번역하여 쪽 복음으로 출간하였다. 그리고 이수정은 미국선교부에 선교사를 조선으로 파송하여 줄 것을 거듭거듭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미국 장로교 선교부에서는 이수정의 연이은 선교사 파송 요청에 응하였고, 인도선교사로 가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언더우드에게 권하여 조선으로 가도록 조처하였다. 그리하여 언더우드는 인도선교사가 될 사람이 조선선교사로 바뀌어 오게 된 것이다.
둘째는 외국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조선에 먼저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황해도의 서상륜 같은 신도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는 중국으로 장사하러 다니다가 만주에서 미국선교사를 만나 전도 받아 크리스천이 되었다. 서상륜은 귀국하여 고향에서 전도하였기에 한 무리의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셋째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교회가 먼저 세워져 있었다. 이런 경우는 세계 선교 사상 특이한 사례이다. 선교사가 현지에 들어가기 전에 교회가 먼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황해도 소래(松川)란 곳에 서상륜이 세운 교회이다. 물론 초가집인 볼 품 없는 건물이긴 하지만 자습으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끼리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미국선교사 언더우드가 한양으로 들어와 먼저 한 것이 소래교회로 가서 이미 믿는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다. 이런 현상들이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와 크게 번성하여 나갈 것을 예고하여 주는 현상이었다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아세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이미 준비된 백성들이었던 점이 가장 두드러진 이유가 될 것이다.
구한말에는 유학을 지배 원리로 하던 구체제는 무너져 가고, 아직 새로운 체제는 들어오기 전이었기에 조선 백성들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었던 때이다. 나라의 운명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때였기에 백성들의 마음이 의지할 곳이 없었다. 이런 때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자 바닥에서부터 뜨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