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벽송 김정길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황량한 벌판 그 어디인가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 때문이고, 우리사회가 아름다운 것은 묵묵히 봉사하는 나눔의 숨은 천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국민추천포상제를 통해 우리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나눔을 실천하는 24명의 숨은 천사들에게 훈장과 포장을 수여해서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한마디로 나눔의 천사들은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였다. 지위가 높거나 부자도 아닌 성직자, 위안부할머니, 소금장수, 운전기사, 무료 국숫집 주인, 주부 등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평범한 서민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서로 직업과 성별, 학력과 출신이 달랐지만 하나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행복의 바이러스가 넘쳐흘렀다.
게다가 그들의 면면은 한 편의 인생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예컨대 ‘수단의 슈바이처’로 추앙받는 고 이태석 신부는 기아와 질병으로 시달리는 수단 톰즈에서 성직자와 의사로 헌신하다 대장암으로 지난해 1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다큐영화 ‘울지마 톰즈’로 꾸며진 그의 생애는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인간 소금’으로 불리는 강경환 씨는 13살 때 지뢰사고로 양손을 잃은 일급 장애인의 몸으로 건강한 사람도 해내기 힘든 염전을 혼자서 일궜다. 그리고 연 수입 3천5백만 원 중 10%를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등 나눔에 앞장 서는 ‘사랑의 밀알’ 대표까지 맡아 가슴을 찡하게 했다.
‘김밥 할머니’로 불리는 이복순 씨는 40년 동안 홀로 외아들을 키우며 김밥을 팔고, 여관을 꾸려서 번 돈 50억 원어치 부동산과 현금 1억 원을 충남대학교에 기탁한 여장부다. 지금까지 250여명의 젊은이들이 장학금 혜택을 누렸으며, 마침내 그 아름다운 선행과 삶은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재된 ‘기부문화를 이끈 아름다운사람’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 할머니는 노환으로 오히려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였다. 그렇지만 식모살이로 궁핍하게 살아오면서 폐지와 빈병을 모은 돈 1억 원을 서울 강서구장학회에 쾌척한 애국자였다. 이 때문에 강서구 직원과 주민들 사이에는 매달 1만원씩 기부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황 할머니 모습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스러져 간 유관순 열사의 환영을 보았다.
그밖에도 보따리장사와 폐지판매로 평생 모은 15억 원을 대학교육발전을 위해 기부한 길분예 할머니, 무료급식소인 민들레국수집을 운영, 매일 400명의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한 서영남 씨,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 국가사회를 위해 모두 기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김용철. 조천식 두 할아버지도 나눔의 천사 대열에 합류했다.
또 30년 동안 불우아동과 독거노인을 돌보며 ‘자원봉사의 여왕’으로 불리는 노금자 씨, 전국을 돌며 노인들에게 안경을 맞춰 주는 박종율. 안효숙 씨 부부, 일본 위안부 피해자로 힘들게 모은 2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한 이옥선 할머니, 30년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정상모 씨, 아프리카. 몽골 등 국내외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김태옥 씨, 간호사로 근무하며 쪽방촌 환자를 내 가족처럼 돌봤던 유옥진 씨,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하고 재소자 교화에 힘 써온 조성부 스님, 검소한 생활로 모은 수억 원을 기부한 하충식 병원장, 일식집을 운영하며 번 돈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주방보조 출신 배정철 씨 등도 나눔과 기부문화를 선도하는 천사였다.
그런가하면 11년 동안 전주 노송동주민센터에 수 천 만원씩 남몰래 가져다 놓는 ‘얼굴 없는 천사’처럼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은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나눔의 숨은 천사’로 영원히 남겨 두는 게 더 아름다울 성싶다.
아무튼 올해 처음으로 국민들이 추천한 361명 중에서 선정된 24명의 나눔의 숨은 천사 찾기 사업은 나눔의 문화를 사회에 확산시키고, 국민과 숨은 영웅들에게 희망과 용기도 함께 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훈장과 포장은 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쯤으로 인식되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 온 게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도 고을수령이 바뀔 때마다 오늘날 훈장과 포장을 남발하듯 백성들을 몰아세워 마구잡이로 송덕비를 세웠다. 그러나 고을 수령들이 떠난 뒤, 오물 세례를 받거나 거리에 내동댕이처지는 송덕비가 비일비재했다. 오죽하면 백성들이 탐관오리로 유명했던 과천현감의 송덕비에 ‘오늘에서야 이 도둑을 보내노라.’하고 포복절도할 비문을 새겼을까. 그런가 하면 선조 때 아산현감을 지낸 이지함은 거지들을 보살피는 걸인청(乞人廳) 등을 설치한 공적을 기리고자, 백성들 스스로 영모비를 새워 후세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국민추천포상제도의 효시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정부에서는 ‘나눔의 숨은 천사’는 쉼 없이 찾아야겠지만, 행여 조선시대에 판치던 송덕비 세우기의 전철을 밟는 일은 없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서 나눔의 일체유심조를 실천하는 숨은 천사들의 생애가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2011. 8.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