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 옷깃을 세우는 계절이 왔다.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며칠 전 한 할머니가 개성고 교장실을 찾아오셨다. 그분께서는 학교에 기부하겠다고 의사를 밝히고 기부금을 내밀었다. 교장 선생님은 할머니의 외형적 모습으로 보아 소액 기부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내민 기부금은 자그마치 5천만 원이었다. 기부자의 이름을 절대 알려고 하지도 말며, 더구나 언론에 알려지는 것은 더욱 더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그분께서 굳이 우리 학교에 기부하신 이유는 투병 생활하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자녀분이 67회 졸업생이라 했다. 후배를 위해 의미 있게 써 달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께서는 끝끝내 본인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학교를 떠나셨다. 평생 동안 택시 한 번 타신 적이 없으셨던 할머니께서는 학교로 오는 길에 보안상 처음으로 택시를 타셨다고 한다. 이러한 할머니의 기부의 뜻을 교직원 회의에서 소개하신 교장 선생님께서는 할머니의 기부 뜻을 잘 살려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훌륭하게 활용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언론에서나 보도되던 기부의 한 장면을 학교에서 목격하게 되니 '기부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 내내 진한 감동과 여운이 남았다. 우리 사회도 기부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의정부에는 환경미화원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숫집이 있다. 환경미화원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기금을 마련하고 직접 운영한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한 노인들에게 무료로 국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있다. 한 끼의 식사도 해결하지 못한 노인들과 함께하는 환경미화원들의 식사 기부는 결코 넉넉해서 나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누는 과정에서 그분들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빛나는 것을 보게 된다. 아흔넷의 길분예 할머니 이야기도 있다. 낡은 계단을 기다시피 해서 3층까지 올라가면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방이 있다. 그런 할머니께서 15억의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다. 그것은 할머니가 평생 절약해서 모은 재산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옷이나 가방, 그리고 집에서 쓰고 있는 거의 모든 물건들은 이웃에서 버린 것을 재활용한다. 자신은 난방비도 아까워 절약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도 입지 않으면서 모아 기부했다.
국수 한 그릇·책 한 권·보유한 재능 등 다양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려는 '마음 가짐' 중요
우리 사회에도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기부문화 확산에 연예인 기부가 기여한 측면도 크다. 연예인 기부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김장훈이다. 그는 생활 여건이 어려운 학생들과 보육원 등에 매월 1천500만 원을 10여 년간 지원해 왔다. 지금까지 총 기부액은 5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재능 기부도 늘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을 모아 발레 연습을 시켜 무대에 올린 발레 강사가 있다. 세상과 단절된 음습한 곳에서의 노숙 생활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노숙인을 모아 발레리노로 훈련시켜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발레를 통해서 자신의 손, 몸, 발의 모습을 아끼고 사랑하게 하여 삶의 활력소가 되게 했다. 공연 단원의 일원으로 무대 위에 세우기 위해 그들을 연습시키면서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서로 눈을 마주치게 하는 행위, 이런 행위 하나하나를 음악과 춤으로 변화시키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자신의 재능을 활용했다. 수년간 거리에서 방황하던 그들이 당당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건강한 삶을 살게 해 준 발레 강사의 재능 기부는 세상과 단절하고 살던 노숙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기부의 실천은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아껴 절약하고, 자신이 소장한 한 권의 책을 기부하는 일에서부터, 국수 한 그릇, 연탄 한 장이라도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는 나눔의 실천이야말로 기부의 정신을 살려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재능이나 프로그램 기부를 통해서 이웃과 함께 나눌 때 생활 속에서 기부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박길자·개성고등학교교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