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기본 5계를 포함해서 천수경에 나오는 십악인데 이를 없애면 극락세계에 가는 십만억국토를 지나서 극락에 갈 수 있다.
‘나’라는 것이 연기현상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공이라고 알면 십악의 열가지가 한꺼번에 없어집니다. 십악은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서부터 생깁니다. 하나둘씩 고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면 한꺼번에 다 고쳐집니다.
만약 태어나고 죽음이 없는 동법을 돈법을 깨닫기만 하면 극락정토를 보는 것이 자못 찰라간에 있음이요. 돈교의 대승의 정견을 깨닫지 못하면 염불을 하더라도 극락에 가는 것이 멀기만 하니 어찌 도달할 것인가 했습니다. 우리의 바른 마음이 서방정토 극락세계이고 아미타부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견을 바로 세우는 것이 극락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근기가 약한 분들을 위해서 서방에 극락세계가 있으니 부지런히 염불해서 극락세계에 태어나라고 한것이지요. 내가 없고 세상만사 모두가 연기의 소생인줄 깨닫으면 바로 극락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몸(색신)은 성과 같고 ‘안이비설신’은 성문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과 성문을 벗어나야 정견이 서고 정견이 서 있어야 극락세계가 보이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자성을 짓는 것이니 몸밖을 향해서 구하지 말라. 자성(내마음)이 미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고 자상을 깨닫으면 중생이 곧 부처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비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데 관세음보살은 ‘나’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서 연민하는 것이 바로 자비이고 연민하는 마음이 관세음보살인 것입니다. 우리가 도 닦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삼라만상)은 실체가 없고 공이라고 하는 본질(진리)을 보는 것을 도 닦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내가 있다고 하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무식하지만 말을 참 잘하시는데 심통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변을 여의고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자유자재 합니다. 있는데도 걸림이 없고 없는데도 걸림이 없으면 자유자재하게 됩니다.
마음이 편안하게 되고 말도 잘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이 한정되여 있습니다. 있다-없다 에 한정되어 있어 범위가 좁습니다. ‘있다-없다’와 ‘나다-너다’ 하는 견해가 부서져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모-든 것을 진리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