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N매거진)옥천 가산사의 유물과 유적 및 임진왜란 당시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
(OTN매거진)옥천 가산사의 유물과 유적 및 임진왜란 당시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
  • 임헌선 기자
  • 승인 2020.10.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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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N매거진)옥천 가산사의 유물과 유적 및 임진왜란 당시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

가산사(佳山寺)는 충북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산211번지 채운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과 의승군(義僧軍)이 활동했던 사찰 가산사(佳山寺)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로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이 병자호란 이후에야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오지였고, 그 규모 또한 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가산사는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의승군과 의병이 훈련했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장들로는 곽재우, 고경명, 정문부, 조헌등이 있고, 의승군으로는 서산, 사명, 영규, 처영, 신열, 법정스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영규대사는 서산대사가 승군의 총책임을 맡기 전 자발적으로 승군을 조직한 최초의 승장(僧將)이시다. 이곳 가산사 일대는 이러한 영규대사와 조헌선생이 의승군과 의병을 훈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분은 청주성 탈환에 큰 공헌을 하였고, 금산의 연곤평 전투에서 순절했는데 국가에서는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가산사를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진영을 봉안하여 제향(祭香)을 올리게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한 조선총독부는 그간 전해오던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제로 빼앗아 가버렸고, 불온사찰이라 지목하여 가산사를 탄압하기도 했다.오늘날 옥천군에서는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충의열사들을 위해 해마다 가산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한 순절한 의승군과 의병을 위한‘순국충혼위령탑’건립을 발원하며 호국의 성지를 새롭게 가꾸어 나가고 있다.

가산사에 현존하는 건물은 극락전과 산신각·요사 등이다. 극락전은 1624년 중건할 때 지은 것으로, 내부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인 아미타불좌상이 있다. 아미타불좌상은 향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90cm이다. 복장에서 나온 (복장기(腹藏記))에 따르면, 1624년 경상북도 김천시 쌍계사(雙溪寺) 북암(北庵)에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복장에서는 이밖에 유물로 (묘법연화경홍전서(妙法蓮華經弘傳書))1권 등 6점의 문헌이 나왔다. 이들 문헌은 1477년(성종 8)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花巖寺)에서 간행한 것으로 조선초 서지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산신각도 극락전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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