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N매거진=임헌선 기자>행복청, LH세종본부, 세종시가 세종지역의 문화유산 17년간 방치후 이젠 2024년 문화재 전문위원 감정 가치없다 철거 하기로 하여 임씨문중과 시민단체의 보존 제안 그리고 세종 출입기자들이 계획 취재에 나섰다.

이 문화유산는 세종시 전월산 아래 양화리 마을 임씨가문 집성촌 마지막 남은 임경철 고택 철거 위기에 놓여 세종시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예상되고 있는곳이다
지난 12월 10일(화) 15:00 LH세종본부장실에서 임씨문중 및 세종 출입기자가 참석하는 간담회가 있었다.
이날 LH세종본부장은 ‘문화재 전문위원들 감정에 가치가 없다’라는 결론으로 부득이하게 가치가 있는 일부분은 고은동 역사박물관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한 참석자 질의에서 17년전 감정 문화재 전문위원과 2024년 문화재 전문위원의 감정변경 협의 사항에 대하여 답변을 요구했으나 해명을 하지 못해 지속적인 취재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부안임씨 문화유적 보존연구회 임경철 고택 보존 방안에 대한 글이다.
임경철 가옥 관광 활성화 방안의 임좌순(林左淳)씨 제안서이다.
1. 들어가며 주5일근무제는 1908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였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에 노동자들을 위해 복지혜택을 부여한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여러 국가가 채택하여 실시되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는 2002년 7월부터 전국의 모든 은행이 실시하고 이듬해인 2003년 주5일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부터 정착화되었다. 따라서 주5일제도임 및 휴가제도 개선 등 근무 여건의 변화로 주민들의 여가활동은 가족여행 및 숙박, 여행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또한 관광 흐름이 체험, 주제, 교육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자연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고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이고 체험적인 관광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 예술, 역사를 배우고 체험 관광하는 것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관광객들 간에 서로 교제하는 등 복합적인 관광을 선호하고 있다.
이에 고택, 종택, 한옥 등 한국 고유의 전통가옥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전통가옥은 건축적으로도 학술적,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어 새로운 관광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어야 한다.
전통가옥은 건축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한국 고유전통과 문화를 보유하고 있어 문화유산의 활용방안이 문화관광자원 또는 문화 향유권 측면에서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가치나 기능 또는 능력을 잘 살려 지속할 수 있게 이용하는 행위, 혹은 문화재가 지닌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경관 가치나 기능 또는 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2. 고택 관광의 현황최근 전통가옥을 체험하는 관광객 수가 매년 많이 증가하고 있으며, 고택 문화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례가 지방자치단체마다 정책적으로 추진되어 관광객의 수요에 맞추어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고택이란 오래된 집이란 뜻으로, 종가, 종택, 고가 등과 더불어 사용되어 온 전통가옥의 대표적 명칭이다(오훈성, 2014). 고택은 적어도 100여 년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주거 기능이 포함된 전통가옥이라 할 수 있다(송완구·이동민, 2011). 대부분의 고택은 전통문화가 계승되는 곳으로 종가나 역사적 인물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이 보존되어 있다(신윤숙, 2003). 고택은 사당,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의 주거시설과 더불어 정원, 연못, 정자 등을 포함하고 있어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크며 종가의 역사나 가훈 또는 의례 등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역사적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가치가 높은 특징을 갖는다(김혁수, 2010; 오훈성, 2014).2020년 현재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 중 고택은 180개이며, 그중 43.8%가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등의 전통 고택이 많은 경상북도에 소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문화재청, 2020). 그다음으로는 전주한옥마을이 있는 전라남도에 31개, 충북에 15개, 충남에 14개 등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중이 경상북도의 15개소(개인 가옥 14개소, 마을 단위 1개소)는 문화관광체육부 주최 ‘2020년 전통 한옥 브랜드화 사업’에 선정되기도 하였다(프레시안, 2020). 현재 명품고택으로 지정된 한옥 문화재는 총 87채이며, 명품고택을 포함한 총 186채의 한옥이 한옥 숙박업소로 지정되어 있다(한국관광공사, 2018).고택의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고 그 효용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은 지속해서 확대됐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체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였는데, 음식, 공연, 교육, 놀이 등의 폭넓은 요소를 포함한 체험행사를 제시함으로써 관광객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송완구· 이동민, 2011). 실제로 대부분의 고택은 공간을 누리는 숙박 체험과 더불어 다도, 공예, 음악, 민화 등 고택 및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고유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프레시안, 2020).특히 전통가옥에서는 숙박, 체험, 교육, 공연 관람, 휴식 등 다양한 체험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있어 관광객들의 선호도가 높다. 최근 전국 자치단체마다 특색있는 정책을 펼쳐 전통 마을들이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고택과 한옥 등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택 자체 관람뿐만 아니라 숙박이나 전통문화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 다양한 체험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택은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선호도가 높아 그들에게 전통 한옥의 숙박 체험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관광객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고택과 같은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방문해 휴식과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관광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여행을 넘어 명문 종가의 생활문화나 역사적 전통을 배우고 종부 또는 지역주민과 문화적 교류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광 방향 역시 단순한 휴식이나 휴양을 넘어 지역문화를 체험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고택 체험은 전통가옥이라는 주거공간을 매개로 참여자 사이의 역사나 문화적 소통을 더욱 각별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러 지역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의 구실을 함으로써 문화콘텐츠 소비 관련 관광수요를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처럼 고택 체험이 생활 전반에 걸친 매우 특별한 문화적 경험으로서 관광객을 자극하고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고택 경험에서 비롯되는 관광객의 총체적 체험 요소에 대한 이해의 폭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옥이나 고택, 또는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관광객들의 숙박 체험을 하였지만, 단순한 숙박 체험으로 한정한 경우가 많거나 문화적 체험의 측면보다는 상업적 시설체험의 측면에서 접근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관광자원으로서의 고택 본연이 창출하는 체험 가치를 떠나 부분적으로만 이해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관광산업에서도 체험활동이 강조되면서 관광객이 소비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체험을 확대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 왔다. 관광객들이 기억하는 체험의 성격에 따라 해당 상품 및 서비스의 가치 인식에 뚜렷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3. 부안임씨 동족 마을의 형성이 마을은 신석기시대에 촌락이 형성되고 청동기시대부터 수렵 생활의 터전이었다고 전한다.
유사 이래로 백제의 두 임지현, 신라의 웅주, 고려의 청주 목에 속하여 오다가 조선 개국 이후 공주 목 삼기총으로 또한, 태종이 연기 고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기군 남면 양화리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2004년 정부의 행정복합도시건설계획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마을 인구는 2005년 기준 146가구 335명이 살고 있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원수산과 전월산으로 둘러싸이고 금강을 가까이 두고 있으며, 동편 전월산과 서편의 원수산과 북쪽으로부터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배산임수형의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남쪽의 금강과 장남 평야는 천혜의 농경 자원으로 옥토 낙원을 이루어 조선 초기 이후 대대로 부안임 씨들의 세거지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동족 마을인 부안임씨 집성촌으로 발전했다.
최근에 세종특별자치시가 행정수도로 정착하여 국회의사당과 대통령집무실까지 건립하기에 이르고 있다. 이에 전국에서 이주해온 세종시민들이 신도시 거주지역을 630여 년간 개간해온 부안임씨(扶安林氏) 전서공파(典書公派)의 선조와 후손들의 피땀이 어린 개척사를 이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도 그들의 중시조인 공조전서(工曹典書) 문희공 임난수 장군(林蘭秀 1342~1407)은 이 지역의 향토사에서 세종시 건설과 함께 새롭게 인식해야 할 역사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동족 마을이 형성되어온 것은 고려말 최영 장군과 탐라 정벌에 큰 공을 세웠던 임난수장군으로부터 비롯된다. 임 장군은 고려 삼 층 신(정몽주, 길지, 이색) 등과 같이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할 무렵 조선 건국에서 공조전서로 부름을 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큰 충절을 지켜온 고려 충신이었다.
임 장군이 전북 부안으로 낙향하던 도중에 전월산과 원수산을 배경으로 산수가 화려하고 비단 물결 같은 금강 변 삼기촌에 은거하면서 이후 부안임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임 장군 사후에 세종대왕은 충절을 기려온 고려조 출신 충신들에게 큰 포상을 내리는 조선의 은전이 있었는데 그때 세종대왕께서는 나성일구강산을 사패하고 신숙주의 부친 중군총제 신장에게 명하여 임씨가묘란 편액을 써주도록 하여 이로부터 불천위제사를 드려왔다.
또한, 사제문에서 시기를 도울만한 기략을 운영하고 세상을 덮을 만한 공을 세웠다고 칭송하였고, 청양 현감 김미에게 제향을 명하면서 무릇 공적은 다른 시대에 있었으나 그 포상이 이처럼 훌륭하도다. 하였다.
세종대왕께서 ‘공의 충절을 기리라’라는 명령과 함께 사패지지로 하사한 현 세종시인 장남 평야(羅城, 一區江山)를 630여 년간 개척 개간하여 부안임씨 동족 마을을 형성해 왔다.
1990년대 통계청에서 발표한 국내 최대의 부안임씨 집성촌으로 발전했다. 이로부터 장남 평야 주변의 여러 마을이 대대로 부안임씨들의 세거지가 되었다. 임장군은 선견지명이 있어 이 시기에 맞추어 민족의 진운에 부합한 행정수도를 예견한 것처럼, 일찍이 행정도시 개발을 예견해온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미리 바라본 최대의 선각자였다.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최초의 선각자임을 부안임씨 문중 종원을 비롯한 세종시민들이 새삼 크게 깨닫게 되었다. 공조전서 문희공 임난수 장군의 고증할만한 기록으로는 과 를 비롯한 장례 당시의 기록인 과 우암 송시열이 찬술한 와 숙종 30년에 중건한 등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특히 임경철 가옥이 소재한 가학동은 가학이란 동명이 마을 전역에 가라지가 자생하였고 전월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지형이 학의 모양이라서 가학으로 구전되어 온 데서 유래한다.
금강의 지류인 가학천이 농경의 젖줄이 되어 상촌, 곡촌, 월룡, 학동, 하촌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문전옥답을 이루고 있었다.
가학마을은 삼기촌 세거리의 중심지로서 부안임씨 선조들의 분묘가 많아 후손들의 안녕을 지켜주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당에서 학동들이 유학을 수학하였고 오늘날의 신학문이 성행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또한 산수가 수려하여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맺어 씨족집단으로 번창하는데 큰 몫을 담당해왔다. 주위의 토지 대부분과 임야 등은 부인임씨들이 소유한 토지이거나 종산이었다.
4. 임경철(林庚喆) 가옥의 형성가학마을은 원수산 아래 가학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으로소나무 숲이 우거진 나직한 야산이 감싸고도는 마을이었고, 임경철 가옥은 남향에 있는 18세기 중반 조선 후기의 전통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옥 고택이다.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전통가옥이다.
이 가옥은 19세기 초 임노규(林魯珪)가 지은 민가 가옥으로 역 기역 자의 목조 와가로 된 안채와 니은자 형태의 목조와가 형태의 행랑채로 건립되었다.
노규(魯珪)의 증조부 달우(達雨)와 조부 이종(履鍾)과 부 정조(正祚)부터 이어온 5대 천석꾼의 부호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윤리적인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인보상조 정신을 실천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여왔다.
가학동 마을은 부안임씨의 씨족 중심으로 한 마을에 이십여 대를 내려온 씨족 중심의 마을로 전형적인 향촌 사회의 농촌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 처음으로 세거했던 분은 전생서 주부를 지낸 임준(林俊)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분으로부터 이십여 대를 내려오며 부안임씨 동족 마을로 이어져 왔다. 임노규(林魯珪)는 임준의 13대손이다.
그의 자 임경철(林庚喆)이 근대기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3.1운동, 8.15해방, 수난의 6.25 한국전쟁을 겪어왔고 60년대 개발의 시대를 거쳐 80년대 후반까지 거주해왔다.
이 고택은 한때 우람한 본채와 행랑채를 비롯하여 동편으로 종인들이 거주하는 가옥들이 여러 채가 산재해 배치되었다. 조선통독부가 발행한 통계에도 부호로 등재된 명문 부호였으나 현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주변 마을들이 모두 헐리고 이 가옥만 남았다. 현재는 안채와 행랑채에 붙은 대문과 창고 곡간 등 문간채만 남아 있다. 안마당이 트이지 않고 사방이 막힌 ‘ㅁ자형’ 이다. 안채의 중심부에 안대청을 두고 좌우에 안방과 건넌방을 배치했다.
대청 서측의 방 앞쪽으로 부엌을 두고, 부엌 상부는 누다락을 만들어 안방에서 출입하도록 했다. 안대청의 서측 익랑은 길게 마루를 설치하여, 두 개의 방으로 쓰였다. 안대청의 동편에는 판벽으로 막아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용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안채의 기단은 4자 이상으로 높여 아래측 행랑채와는 높낮이 차가 심하다. 벽은 옛날대로 흙벽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물 일부가 허물어졌고 중요한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다.
현재 안채와 행랑채만 보존되었으나 동편의 여러 건물은 철거되어 전체적인 배치구성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가옥을 보면 충청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매우 폐쇄된 배치구조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급하지 않은 입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안채의 대지는 급한 구릉에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배치에 따라 안마당의 폐쇄감이 강하게 되고 안대청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안대청과 지붕선을 맞추기 위하여 양 익랑까지 높아지게 되었다. 양 익랑이 높아짐으로써 마치 중층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5. 임경철의 선행 임경철은 고종 때의 문신으로 대사헌을 지낸 후 인근 마을에 낙향한 고산 임헌회(任憲晦)와 그의 수제자인 간제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한 우당 임노창(林魯彰)에게 한학을 배웠다.
그는 유교적 교양을 일찍부터 사서를 통달하여 주자 성리학뿐 아니라 두보를 비롯하여 소동파 등 당송팔대가의 시와 한당 문학에도 심취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수백 권의 서책들과 시문집, 학천문집문집(임경철개인문집)등을 남겨 당시에 보기가 드물게 한문장을 지어 많은 글을 남긴 명문장가이기도 하였고 많은 문화사업과 향촌 사회의 온정을 많이 베풀어 온 너그러운 선비였다.
그의 윗대로부터 이어온 선행은 인근 종족들에게 해마다 설 명절과 춘궁기와 상례시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 늘 온정을 베풀어 왔다.
이때 베푼 백미는 해마다 삼십여 석이 넘는다고 옛 어른들은 말해왔다. 특히 을미의병을 비롯하여 을사년 정미년 등 십여 년간 이어온 의병투쟁과 기미년 3.1운동 및 6.25 한국전쟁 등의 격동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곡간에 가득 쌓인 쌀과 재정으로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면서 많은 자선을 베풀어 왔다. 그리고 1963년에 연기향교 전교로 부임하여 유교 중심사회의 유교 이념을 가르치고 향촌 사회의 도의 정신을 함양하여 향촌 사회를 교화해 나갔으며, 또한 효의 정신을 진작시켜 효제충신과 이웃과 더불어 화목할 것을 권장하고 유교 윤리교육에 앞장서 왔다.
그는 낙후된 향교시설건물들을 중수하고 증수기도 남겼다. 또한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지만, 그는 인근 주민들과 원근 각처를 막론하고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은 채 백성들을 구호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가학마을은 원래 농토가 적은 마을이어서 기근이 들면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인근 주민들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같이해오면서 일정량의 구휼미와 문화사업 등에 재정을 후원하면서 향촌 사회에 온정을 많이 베푼 너그러운 선비였다.
이러한 상부상조의 전통이 오래도록 유지했기 때문에 동족 마을의 미풍양속과 아울러 고유한 씨족문화가 형성되어 왔다. 더구나 보릿고개와 춘궁 등 기근이 들면 자체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 늘 베풀기를 힘써왔는데 특히 인근 종족들에게 설명절과 춘궁기와 상례시에 가난한 이들을 구호했던 애향심과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운(士雲)은 1894년(고종 31) 의병이 일어나자 곡식을 군량미로 아낌없이 내놓았다고 한다.
구한말 어수선한 나라의 정세에서 의병을 위해 선뜻 선비가 곳간의 빗장을 푼다는 것은 사운(士雲)이 아니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운(士雲)의 그러한 나눔의 정신은 다음 대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1929년 지방 유림이 주축 되어 발행한 연기군지 발간에 협력하여 거금의 성금을 내놓아 군지 발간의 활력소가 되어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하였음이 군지에 게재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성금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임경철은 선대인 사운(士雲)의 뒤를 이어 나눔을 실천했다. 또한 인근 연세초등학교가 개교될 초창기에 통돌로 된 학교 교문을 세워주고 학교 대지 확보와 운동장 건설에 힘쓰면서 초창기 학교 부흥에 이바지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헌신하였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임경철 가옥은 6·25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사령부로 쓰였는데, 피난을 간 식구들 대신에 부인이 집을 지켰음에도 화를 당하지 않았고 한다.
이러한 연유는 선대로부터 평상시 가난한 이웃에게 곡식을 나누고 마을에 산모라도 생기면 반드시 쌀과 미역을 보내는 등 온정을 베풀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수산 정기와 가학천 맑은 물이 흐르는 전답에서 소득을 얻었으니 검소와 근면을 행동에 옮기며 내 고향을 사랑하고 베풂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는 인생관은 부안임씨 집안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함은 물론이고 선비의 정신과 오랜 역사를 지녀온 베풂을 실천하며, 전통을 지켜내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고택은 행랑채 바깥마당이 꽤 넓은 면적으로 인근 주민들과의 화합의 장으로 활용되어 추석 명절 전후와 추수기가 끝난 늦가을에는 항상 이동 영화 상영과 가설극장을 설치하여 연극공연을 하도록 하였다.
마을 중심부였던 바깥마당은 정월 대보름과 오월단오와 칠월칠석날 등 매 절기 때 농악을 울리며 모든 마을 주민들이 모여 노래하며 가무로 흥을 돋우었다. 더욱이 1987년도에 mbc베스트셀러극장 “상두놀이”촬영의 배경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임난수 은행나무와 양화침례교회, 금강 낚시터, 연세초등학교 정문을 향한 풍경 등으로 당시 양화리의 생생한 모습들이 원주민들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6. 가옥의 활용방안 고택이란 오래된 집이란 뜻으로, 종가, 종택, 고가 등과 더불어 사용되어 온 전통가옥의 대표적 명칭이다.
고택은 적어도 100여 년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주거 기능이 포함된 전통가옥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고택은 전통문화가 계승되는 곳으로 종가나 역사적 인물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고택은 사당,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의 주거시설과 더불어 정원, 연못, 정자 등을 포함하고 있어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크며 종가의 역사나 가훈 또는 의례 등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 가치가 높은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고택의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고 그 효용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은 지속해서 확대됐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체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였는데, 음식, 공연, 교육, 놀이 등의 폭넓은 요소를 포함한 체험행사를 제시함으로써 관광객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택은 공간을 누리는 숙박 체험과 더불어 다도, 공예, 음악, 민화 등 고택 및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고유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04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계획 부지 내 수많은 원주민은 보상을 받고 타지로 이주하였다.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기존 마을들은 모두 철거되고, 정부의 여러 기관과 주거시설, 도로 교통시설물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세종시 가학동에 있는 임경철 가옥은 민속자료로 존치하기로 확정하였다.
부안임씨들의 삶의 흔적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임경철 가옥은 가옥 건물이 존치되어 온 지 20여 년이나 방치되고 시간이 경과 할수록 노후화되어 훼손이 심각하고 퇴락하여 민속자료의 가치가 희박하여 가고 있다.
이에 세종시 원주민들과 고향을 떠난 인사들은 애초 정부가 결정한 대로 민속자료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유지보수가 필요하다고 다수의견들을 결집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화가 심각해지고 부안임씨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어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공사는 시급을 요하는 임경철 가옥을 유지보수하도록 예산을 확보하여 세종시의 문화예술발전을 위하여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유지보수가 완료된 이후에는 세종시의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여 고택을 중심으로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체험형·체류형 등의 관광상품 개발을 통해 내외국인의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관광 활성화에 동참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첫째, 가옥을 전면 재보수하여야 한다.
행정복합도시건설의 진행 과정이 장기화하여감에 급한 정부가 필요한 시설물들의 설치가 우선이고 보존하기로 한 임경철 가옥은 뒷순위로 밀려 폐가 상태로 방치된데다가 폐가 올물 철거인들이 대부분 훼손하여 원형 유지가 매우 어렵게 되었고 보존의 가치가 갈수록 상실되어가고 있다.
행정복합도시건설의 주요 중심부 대부분이 부안임씨들의 세거지로 모두 터전을 잃어버려 상실감이 매우 크다. 이에 대한 상실감의 보상 차원으로 보아서라도 하루속히 조치하여야 한다.
둘째, 이 가옥을 활용하여 사라져가는 세종시 원도심 문화를 재현해야 한다.
행정복합도시건설로 전국 경향 각지로 흩어져 600여 년간 부안임씨들의 공동체가 모두 없어졌으므로 이 가옥을 복원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로 향유되어왔던 향토문화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실향민의 애환을 해결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 세종시의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
부근에 조성되는 부안임씨 역사공원 조성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임난수 은행나무와 유서 깊은 전월산과 원수산을 배경으로 하여 세종시의 문화예술의 구심체가 되도록 조성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여 우수한 향토문화를 발굴 육성하여 지역문화 창달에 힘써야 한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야외마당놀이, 풍물 경연, 야외극장, 각종 문화예술의 야외공연장, 야외음악당 등으로 활용할 수 있어 종합적인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넷째, 세종시민들의 쉼터 공간으로 활용 여가를 건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회의장, 심포지엄, 예술작품전시관, 야외결혼식, 여러 문화예술단체 등의 행사장소로 활용할 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진 원도심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진작시켜 사라져가는 옛 모습을 동경하며 자주 모이게 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된다면 원도심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구심체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고택을 이용한 민박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국에서 정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방문하는 민원인들이나 공무출장이 잦은 공무원들, 그리고 세종시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한옥 민박 시설로 활용한다면 유사한 사례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활용도가 매우 높은 추세에 있으므로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섯째. 정부종합기관이나 세종시 영빈관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정부청사에는 국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주요 인사들의 방문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한옥 영빈관으로 활용된다면 접대문화의 품위와 정부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또한 소박한 컨벤션 시설물로써 이용한다면 이러한 문화는 조선 시대에도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빈약한 세종시의 숙박시설의 위상을 높여 이를 널리 확충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일곱째. 고택 체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세부 체험 요소들의 개선 및 강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오락적, 신기전, 관계적 체험 요소를 중심으로 고택 체험 서비스의 내용을 개선함으로써 관광객들의 전반적 체험 수준을 높이려는 전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택 체험행사 중에서도 바둑, 투호, 윷놀이와 같은 놀이 문화체험뿐만 아니라 지자체와의 연계를 통해 국악단, 교향악단 등과 함께하는 고택 음악회나 연극단, 또는 관련 영화의 시사회 등을 고택에서 진행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안은 효과적일 수 있다.
7. 나가며 지역 문화재로서의 전통 건축은 문화적, 학술 가치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도 그 활용도가 점차 증가추세에 있고 문화재 보존 차원으로서 많은 고택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처럼 유지됐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임경철 고택은 수익 창출을 기반으로 하여 정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당연성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직도 부족한 정부의 인식을 탈피하여 잠재적 매력 요인이 많은 이 고택에 대해 선별지원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택의 역사, 유래, 주변 유적지, 문화재 등과 같은 교육적, 문화적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고택뿐만 아니라 주변 유적지 및 문화재와 같은 지역문화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종부나 종손들도 함께 참여한다면 체험 관광객들에게 더 현실적이고 친밀감 있는 정보전달과 소통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종부나 종손들이 직접 고택에 관련된 이야기나 고택 생활, 선조 이야기, 고택 음식 조리법, 차례 예절 등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이는 교육적 측면과 아울러 호스트-손님 간의 관계적 측면을 향상시켜 고택 체험의 가치가 확대될 수 있다 또한, 연기면 세종리 원수산과 전월산의 조성사업은 임난수 장군의 활동 무대로 세종시의 주산인 원수산과 전월산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중심부로서 이점이 있다.
이미 원안에 지정된 민속촌(民俗村)은 630여 년간 임장군 후손들의 터전이면서 역사문화와 세시풍속을 고이 간직한 전통 마을이다. 마을의 뒷산은 임 장군의 증손자인 주부공 임준을 비롯한 후손들이 가장 많이 묻혀있는 공원묘지이었다.
민속촌 예정지에는 300년 이상의 분묘가 수십 기나 보존되어 부안임씨 문중의 선산 선영을 보존하는데 유일무이한 마을로 철 따라 원수 산재(시지정 향토문화 유산 45호)를 지내고 임 씨 문중의 시제사가 수없이 행해졌다.
이에 따라 등반로와 산행길로 시민들이 체력을 단련하면서 신도시를 완상하고 민속문화를 보존하며 계승 발전시켜 나가도록 육성해야 한다.
끝으로, 이러한 사항들이 부안임씨 현안 사업과 숭모현창 활동으로 제고시켜 나아감은 물론 이 지역이 임난수 장군과 그의 후손들이 630년간 농토를 개척하고 금강물을 관리해온 개간의 역사적 흔적들이다.
그러므로 20여 년 전부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행복도시 건설청과 한국토지공사가 개발하면서 부안임씨 원주민들에게 이미 공약한 사항들을 반드시 성취시켜주어야 한다. 따라서 시행과정에서 문중 종원들을 비롯한 세종시민들의 제안 사항을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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