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지역 사찰의 역사 (3)
충청도 지역 사찰의 역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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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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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그림자 머무는 그 곳 빛나는 불교문화 꽃 피웠네불교문화, 중국서 전래 됐음에도 불구 부여 백마강 가의 군수리·부소산 절터 등 백제양식 영향받은 전형적 사찰로 유명

<신 청풍명월의 지난소식> 어제가 음력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유적을 소개하면서 사찰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절의 목조 건축물을 비롯해서 수많은 석탑, 불상, 목탁, 그림, 글씨 등은 불교문화이기 이전에 우리의 커다란 전통문화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 삼존불

절은 한자로 사찰(寺刹) 혹은 가람(伽藍)이라고 하는데, 가람은 옛 인도어 승가람마(僧伽藍摩; samghrama)를 줄인 말로서 승가는 중(衆)을, 람마란 동산.원(園)을 뜻하다가 점차 불교사찰을 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 승마가람에는 오래 전부터 불도를 닦는데 필요한 불상과 탑이 특징처럼 있었으며, 탑 주위에 승려 한 사람이 거처하는 방이 마련된 것이 절의 시초이다.절은 인도의 독특한 기후 때문에 동굴에서 시작돼 동굴사원이 발달하였으나, 불상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규모가 커져서 외부 건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중국에 전파될 때까지 운강.둔황과 같은 유명한 석굴사원으로 나타났다가 후한 명제(57~75)때 왕실의 보호를 받으면서 궁성과 인접한 곳에 지은 평지가람이 생겨났다.

중국인들은 불교를 영생불사를 주장하는 외래종교의 하나로 인식하고, 또 선인선과(善因善果).현실구복적인 종래의 민간신앙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생각했다.

그 결과 불교를 새로운 학문이나 학파 정도로 여기고 불교사원과 관청을 달리 구별하지 않아서 절은 ○○사(寺)라 하고, 관청은 ○○시(寺)라고 부를 만큼 엄격히 구별하지도 않았는데, 이것은 성리학을 치국이념으로 하던 조선시대에 서울은 물론 각 지방의 군현까지 그 관청 인근에 주자를 모신 향교와 서원을 세운 것을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불교의 전래역사적으로 불교는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전진(351~394)의 사신을 따라왔다가 귀화한 승려 순도(順道)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온 것이 시초이고, 백제는 그보다 12년 뒤인 384년 침류왕 원년 남조인 동진에 머물던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서라고 하지만, 야사는 중국보다 65년이나 빠른 신라 남해왕 2년(BC 5)에 강원도 유점사(楡岾寺)에 53보살상 전래 전설과 황해도 안악에 전등사(傳燈寺)를 지을 만큼 일찍 전래되었다고 한다.

또, BC 1세기 중엽 오랫동안 낙동강 유역에서 성읍국가를 유지해온 6가야 역시 불교에서 유래하였음직한 나라 명칭이며, 48년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의 전설에서 알 수 있듯이 남방을 통한 물자의 교류와 함께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한다.

또, 중국 둔황의 영향으로 석굴암벽에 부처를 조각하는 방식이 국내에 전래된 것 중 가장 빠른 것은 5세기 초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태안 백화산 중턱(太乙庵)의 자연암벽에 새긴 마애 삼존석불(국보 제355호)과 홍성 용봉산의 마애불, 그리고 1959년 4월 처음 발견된 서산 마애삼존석불(국보 제84호)과 예산군 봉산면 소재지인 화전리 4면석불(보물 제794호) 등이 독특하다.

삼존불은 본존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보살들이 협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태안 백화산의 마애삼존불은 중앙에 보살을 배치하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하는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두툼한 얼굴의 부처 모습 등은 인도나 중국의 영향이 아니라 이미 백제불교가 토착화된 것 임을 보여준다.

또, 서산이나 태안의 삼존마애불보다 일찍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예산 봉산면의 4면석불은 동서남북 4방으로 사방정토.아미타불.석가불.미륵불 등이 조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불행히도 석불 얼굴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없다.

그러나 이곳이 지리적으로 중국대륙과 밀접한 교류를 해온 서해안 최대항구도시인 면천과 인접해 있고, 멀리 서해안을 바라보며 가야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서산 마애삼존불과 그 옆의 고란사와 보원사지(普願寺址)가 있고, 능선을 하나 넘은 남쪽에 상왕산 개심사(開心寺) 등과 인접했으며, 서산 마애삼존불이나 태안의 마애삼존불과 같이 단단한 자연암반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무른 납석 돌로 만들어서 세웠다는 점, 아직 중국에서조차 발견되지 않은 4면석불이라는 점, 그리고 초기 불교유적들이 백제의 서울인 한성이나 웅진.사비성과도 멀리 떨어진 시골임에도 많은 것은 중국과 밀접한 교류의 영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람배치절의 기본구조는 남북을 잇는 중심 축선에 금당과 탑·강당 등을 두는데, 절의 중심 구역인 이곳에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승방도 두지 않았다.

이 구역의 건물 좌우 혹은 동서로 복도처럼 길게 이어지는 것을 회랑이라 하고, 불법을 배우는 강당은 대개 금당 뒤인 북쪽에, 참선이나 불법을 닦는 개인연구소인 암자는 절 주변에 지었지만, 불법을 덜 중요시하는 선종계열의 사찰에는 강당을 두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람배치는 남조시대 양의 영향을 받은 백제의 경우 1탑 1금당으로서 북조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나 신라의 2탑1금당식과 달랐는데, 백제 양식은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으로 그 전형적인 사찰은 부여읍 백마강가의 군수리 절터, 부소산 절터, 정림사지 등에서 볼 수 있다.

가람배치는 대체로 민중들이 사는 세속세계와 불법세계를 경계 짓는 일주문을 시작으로 극락세계를 구현하는 금강문 → 사천왕문 → 불이문(해탈문)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흔히 사문(四門)이라고 한다.

이런 가람배치가 일반인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경남 하동 쌍계사인데, 쌍계사는 일주문~금강문~사천왕문~불이문(해탈문)~ 대웅전이 약10m정도의 사이를 두고 세워져 있다.

우리가 어떤 절을 찾아갈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대문 역할을 하는 일주문은 인간이 사는 속세와 극락세계 즉 부처의 세상을 구별 짓는다는 의미로서 대개 2개의 기둥을 양쪽에 일렬로 세운 우산 모양의 지붕구조인데, 이것은 한 마음(一心)을 뜻하고, 불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념인 평등을 나타낸다.

일주문 옆에는 속리산 법주사의 경우처럼 오른쪽에 하마비를 새겨두고 절을 찾는 고관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서 걷도록 했다.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금강문(金剛門)이 있는데, 금강문은 나쁜 것을 깨뜨리고 올바름을 세운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의미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금강문을 생략하기도 하지만, 금강문 좌우에는 사찰 즉 극락세계를 지켜주는 수문장인 금강역사들이 있다.

금강역사는 인왕(仁王)이라고도 하며, 왼쪽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수비하는 자세로 서 있는 금강역사는 밀적금강(密蹟金剛)으로써, `흠`하고 입을 다물고 있다 해 흠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또, 오른쪽에서 입을 벌리고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금강역사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인데, `아`하고 입을 벌리고 있다 해서 아 금강역사라고도 한다.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문 좌우에 2명씩 모두 4명이 바위나 도깨비 등을 밟고 지키고 있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있다.

사천왕문 동쪽에서 파란 피부에 입을 굳게 다물고, 왼 주먹을 쥐고,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일을 맡고 있으며, 서쪽의 하얀 피부에 왼손에는 보탑을, 오른손에는 삼지창을 쥐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서 뉘우치게 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 남쪽에서 붉은 피부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왼손에는 용, 오른손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는 증장천왕(增壯天王)은 만물이 소생하게 하고, 덕을 베풀게 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북쪽에서 검은 피부에 하얀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손에는 비파를 들고 있는 다문천왕(多門天王)은 어둠 속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맡고 있다. 

금강문의 금강장사들이 극락세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면, 사천왕문의 왕들은 극락세계, 즉 부처가 있는 수미산 중턱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왕으로서 동.서.남.북 4방을 수호하는 무신(武神)들이다.

사천왕문을 지나서 불법세계에 들어서면 수미산 정상에 있는 불이문(不二門 = 해탈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산문(山門)이라고 말할 때 이 불이문을 가리킨다.

사실 수미산은 가상의 산으로써 그 산기슭에는 인간과 가축이 살아가는 세상이 있고, 정상에는 28층의 중층 위에 극락세계 즉 불국정토가 있다고 하는데, 이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에서는 제석천(帝釋天)이 석가모니 부처를 지키며 불법에 귀의하는 자들을 보호하면서 호전적인 악귀 아수라(阿修羅)와 싸운다고 한다.

아리안족의 전통신화에서 유래하는 아수라는 힌두신화에서는 화를 잘 내는 성자(聖者) 두르바스의 저주로 힘을 잃은 데바(deva)들이 우유의 바다 깊숙이 숨겨진 불사의 영약 암리타를 찾는 것을 말하는데, 아수라는 세계의 축을 이루는 메루 산(山)의 지맥인 만다라 산을 뜯어서 바다를 휘젓는 막대기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게 아수라가 바다를 휘젓자 천상과 지상에 숨겨진 많은 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데바들은 아수라가 보물을 찾으면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지만 보물이 나타나자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피나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런 전통신앙을 가진 아리안 족이 기원전 1500년쯤 인도 지방으로 이주하고, 일부가 다시 오늘날의 인도 지역에 정착한 아리안족의 성전이 리그베타(Rig Veda)이며, 이란 쪽으로 옮겨간 아리안족의 성전은 아베스타(Aessta)이다. 리그베타에서는 데바가 아수라보다 우월하고 아수라는 악마로 취급하고 있지만, 아베스타에서는 아수라는 선신이고, 데바는 악신으로 그려진다.

아무튼 아리안 족의 민족 신앙을 이어받은 인도불교에서는 아수라를 호전적이며 용맹스런 악귀로 그려지는데, 아수라와 제석천이 싸우는 곳을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어지러운 난장판을 아수라장과 같다고 하는 표현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불이문을 지나면 극락세계에 들어서는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웅전이 있다. <법무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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