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161)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161)
  • 김재복 기자
  • 승인 2016.08.31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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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국민을 깨우치다

교육으로 국민을 깨우치다

 

1803년 코펜하겐대학을 졸업한 그룬트비히는 긴 세월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려 목사고시를 치렀다. 목사고시 과목 중에는 설교가 있었는데, 그는 '덴마크 목사들이여 회개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당시의 무기력하고 죽은 신앙을 전하는 선배 목사들에 대한 반발로 그런 제목의 설교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험관이 이를 괘씸히 여겨 시험에서 낙제시켰다. 그후 그는 오랜 방황의 시절을 거치면서 한 때는 신경쇠약에 걸려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의 자유사상을 경계한 기성 교회 지도자들은 그가 44세 되었을 때 7년간 설교를 금지하는 벌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제재를 받으며 그룬트비히는 진정한 교육과 농촌개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교육을 살리고 농촌을 살리는 길이 덴마크의 미래임을 믿고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교육과 농촌을 살리자는 그의 주장에 공감한 많은 일꾼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이를 실천하게 되었다. 그룬트비히에게 감동을 받고 덴마크 교육을 살리겠다는 뜻을 품고 국민교육을 혁신한 인물 중 크리스텐 콜(Christen Kold)이라는 교사가 있었다.

 

크리스텐 콜은 그룬트비히의 이상에 감동받아 뜨거운 정열과 탁월한 헌신으로 덴마크 교육을 새롭게 한 인물이다. 젊은 날 교사였던 그는 당시의 관제교육에 학생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기존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교재를 만들어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도록 문답식으로 교육하였다. 이에 뜨겁게 호응하며 학생과 교실이 살아났으나, 기존 교육계는 그의 교수법에 반발하여 그를 교사직에서 추방하고 말았다. 교단에 설 자격을 박탈당한 그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방황하였다.

 

그러나 그룬트비히 목사의 설교에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게 된 그는 참 교육, 학생들의 혼을 깨우치는 산 교육에 헌신키로 결심하고 그룬트비히 목사의 지원을 받아 국민교육을 시작하였다. 1851년 그가 35세 되던 때였다. 그는 농가의 물레방아를 빌려 수리하여 학교건물로 정하고는 학생모집 광고를 마을 곳곳에 붙였다. 그러나 개교 전날까지 지원한 학생은 단 2명뿐이었다. 실망한 그는 나무 아래 엎드려 "하나님 학생 15명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가 기도를 마치고 났더니 이웃 마을에서 학생 13명이 마차를 타고 와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기뻐 뛰었다. 이날이 덴마크 교육에 위대한 변화가 시작된 날이다. 크리스텐 콜의 자유롭고 쉽고 유익한 교육방법이 학생들의 혼을 깨우고, 나라사랑 국토사랑 하나님 사랑의 실천가로 변화시켜 나갔다. 올바른 교육이 국민을 변화시키고 나라를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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