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한 방송에서 작금의 우리 정국을 안개정국이라 불렀다. 정치계가 그러하니 다른 부문들까지도 안개 속을 걷는 듯 불투명하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삶이 안개 속을 걷는 듯하다는 것이다. 나는 안개 속이란 말을 들으면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가 떠오른다.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환하였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떼어놓을 수 없게 나직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여 그의 시를 암송하고, ‘데미안’ 같은 책은 마치 성서나 되는 듯이 품고 다니곤 하였다. 고2 때는 학교생활이 싫증나서 무전여행을 나섰다. 단 2가지만 챙겨 나섰다. 칫솔과 헤르만 헤세의 시집이다. 그 시절 암송하던 시가 ‘안개 속에서’이다. 마산 부둣가 선창가를 걸으며, 여수 오동도 동백섬을 걸으며, 읽고 읽고 또 읽었기에 암송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같이 눈이 내리는 날은 괜스레 마음이 숙연하여진다. 까닭 모를 슬픔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온다. 살아 있다는 것이 서럽고,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를 다시 읊는다./김진홍 목사.